Fabcoop: Uncertainty School 1, 청개구리 제작소: 불확실한 학교 1
준비 과정. “10대 청년이 올 것이다. 교육과 학교에 대한 내용을 진행할 것이다. 갤러리에서 만날 것이고, 친구가 간식을 만들어줄 것이다” 이런 기본 팩트 외에 우리가 정한 것은 없었다. 불확실한 학교의 컨셉은 1~2년 전부터 생각해 왔지만, 주변 기획자나 교육자들에게 이야기해도 그다지 긍정적인 반응을 찾지 못했다. 애초의 생각은 학생과 어른들이 섞여서 각자가 가르칠 수 있는 1가지의 비법을 발견하고, 그 내용을 다듬어서 서로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다. 월가 점령 이후에 매년 5월 1일에 공공장소에서 열리는 뉴욕 자유 대학 (Free University New York)에서 영감을 얻었다. 구체적으로는 데이비드 하비같은 학자가 한쪽에서 강의하고, 정체불명의 (어쩌면 사이비 종교일 수도 있는) 모임이 다른 쪽에서 동시에 열리는 그런 불안정한 에너지가 좋았다. 이번 2월 불확실한 워크숍은 지난 5~6년간 수차례의 교육과 출판 프로젝트에 기획자로, 참여자로, 조력자로 협업해온 청개구리 제작소와는 공통의 호기심과 문제의식을 공유할 뿐이지, 워크숍의 진행 내용이나 소위 ‘커리큘럼’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고 즉흥 연주같이 진행했다.
워크숍 직전까지 우리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워크숍 다음날 오프닝 한 제작자들의 도시 전시 설치를 위해 과천과 서울을 오가며 바쁜 시간을 보냈다. 금요일 전시 설치 후 사당의 한 복합 건물의 카레 전문점에서 허기진 배를 채우며, 시차와 노동의 노곤함과 싸우며 나눈 이야기는 어떻게 하면 ‘촉감적인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을까였다. 마인드매핑, 키워드 공유 등 일반적인 방법도 있었지만, ‘들리지 않는 소리 그리기’, ‘핫 큐션’ 등의 새로운 방법도 생각했다. 워크숍을 준비함에 있어서 불확실함이란 어떤 관객이 올지 모르는 연극 배우의 설렘 보다는, 함께 연주할 파트너를 알지 못하고 공연을 준비하는 뮤지션의 불안함에 가깝다. 그동안의 경험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은 최고의 파트너 같은 워크숍 참가자를 위해 내용을 준비하고, 최선을 기대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가장 첫번째 단계는 우리가 무엇을 가르쳐 주거나 확실한 방향을 제시하지 않으리라는 것에 공감을 얻는 것이다를. 불확실한 학교란 불확실한 생각을 하는 불확실한 사람들이 찾는 틈새다.
워크숍을 준비하며 프레이리의 페다고지 Pedagogy of the oppressed 책을 샀다. (그린비: 남경태 옮김) 하도 주변에서 언급을 자주 해서 이전에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제대로 읽은 적은 없는 것 같다. 훑어 보다가 눈에 들어오는 구절 몇개를 받아 쓴다.
자유를 실천하는 교육은 - 지배를 실천하는 교육과 달리 - 인간이 추상적이고, 고립적이고, 독자적이고, 세계와 무관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또한 세계가 인간과 유리된 실체로 존재한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참된 성찰은 추상적인 인간이나 인간 없는 세계가 아니라 세계와 관계 속에 있는 인간을 상정한다. 세계와의 관계에서 의식과 세계는 동시적이다. 즉 의식은 세계를 선행하지 않으며, 추종하지도 않는다. p 98
민중은 문제제기식 교육을 통해 자신들이 세계 속에서 존재하는 방식을 비판적으로 인식하게 되며, 세계와 더불어,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자신의 참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또한 민중은 세계를 정태적인 현실이 아니라 과정 속에 있는, 변화 속에 있는 현실로 보게 된다. 인간과 세계의 변증법적 관계는 그 관계를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혹은 그 관계가 인식 가능한가)의 문제와는 별개이지만, 그렇다 해도 인간이 택한 행동양식은 세계속에서 자신을 인식하는 방법과 밀접한 함수 관계에 있다. 그러므로 교사-학생, 학생들-교사들의 행동과 성찰을 분리시키지 않고도 자신과 세계를 동시에 설찰하며, 그럼으로써 참된 사고와 행동양식을 계발하는 것이다. p 100
문제제기식 교육은 인간이 변화 과정 속에 있다고 본다. 즉 인간은 미완성의 현실 속에 그 미완성과 더불어 살아가는 미완성의 존재이다. 미완성의 존재이지만 역사성을 알지 못하는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은 자신이 미완성임을 알고 불완정함을 인식한다. p 101
—- 워크숍에서 참가들과 만들어낸 그림과 글, 동영상 등을 정리할 일이 남아있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우리가 배운 것이 어떤 것인지는 아직 다 파악하지 못했다. ‘급진적인 발상’, 혹은 ‘혁신적인 대안’ 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내심 무엇인가 새로운 이야기를 기대하는기는 했다. 우리가 발견한 것은 아름다운 18~19세의 청년들이고, 대부분의 참가자는 처음으로 예술을 생산하는 공간에 참가자로 초대되었음에 기쁨을 표시했다. 워크숍의 마지막에 그들이 다음번에 또 만나라고 몇 가지 제안을 했다.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을 때는 쭈빗쭈빗 하던 참가자들도 워크숍이 끝나자 자기들끼리 2차를 가자고 했으며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어쩌면 기획자의 일은 이미 끝났을 수도 있다 :)